여성 인권이 낮기로 악명높은 파키스탄에서 여성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시위는 최근 2명의 자녀가 보는 앞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린 경찰 수뇌부의 발언에 대한 분노로 촉발됐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파키스탄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경찰의 2차 가해를 비난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당초 시위는 성폭행의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돌린 경찰의 발언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파키스탄의 경찰·사법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요구로 확대되고 있다. 파키스탄 사회의 가부장적 악습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사건은 지난 9일 새벽 파키스탄 동부 라호르의 한 고속도로에서 일어났다. 당시 피해 여성은 두 자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자동차 연료가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 이후 여성은 차 안에서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여성은 경찰보다 먼저 30대 남성 두 명을 맞닥뜨렸다. 이들은 차량 유리창을 깨고 돈과 귀중품을 강탈한 후 여성을 끌어내 인근 들판에서 성폭행하고 도주했다. 범행은 두 자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뤄졌다.

사건 이튿날 라호르 지역의 우메르 세이크 경찰서장은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 여성이 출발 전 연료를 점검하지 않고 새벽에 어린 두 자녀만 데리고 운전을 해서는 안 됐다며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에 파키스탄 국민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반응했다. 경찰서장의 발언이 피해 여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그의 파면을 촉구한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경찰이 피해 여성을 괴롭힌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여성인권 운동가인 모네자 아흐메드는 "파키스탄 사회에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의 행동을 기준으로 '피해자 여부'를 판단하는 악습이 수십 년 동안 뿌리 내려왔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반발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사회가 이를 듣고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말했다.

시린 마자리 인권장관은 "아이들과 함께 밤에 외출한 것을 문제 삼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그 무엇도 성폭행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도 세이크 경찰서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는 성폭행뿐만 아니라 이슬람 율법을 맹목적으로 좇아 정절을 파기했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가족들이 살해하는 '명예 살인' 문제도 심각하다. 파키스탄에서는 매년 약 1000명의 여성들이 '명예 살인'이라는 명목으로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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