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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부터 시작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3-숨겨진 그의 이야기]


[SIDE 에니포]

미치겠다. 씨름이가 뭘 좋아하는지 평소에 얘기해 볼 걸 그랬다. 말을 별로 안 하는 것 때문에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큰 화근이 되어버렸을 줄이야.
그냥 과자나 몇 개 사줄까나? ...어디선가 씨름이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자. 지금 이 주변에 씨름이는 없으니까.
그렇게 마트로 향하던 길, 나는 가급적이면 빨리 가기 위해서 지름길인 골목으로 향했다.
그렇게 골목을 조금 걷다가 내 눈에 마주친 것은...
"..."
"....!"
순간적으로 주머니에 챙겨놨었던 마이크를 꺼냈다.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은, 지난 번 씨름이와 싸웠던 그 불량배 녀석이었다. 게다가 전에 있었던 다른 두 녀석은 없었고 이 녀석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풀지 말자. 저 녀석은 예상 외로 칼을 잘 쓰는 녀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이크의 볼륨을 최대로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헤~에? 잠깐잠깐, 나는 그냥 얘기 하나 해주려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적의는 드러내지 않아도 돼~."
그걸 누가 믿냐. 지금 이 곳에 있는 사람은 너와 나 둘 뿐인데. 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도 야생 고양이는 무시하자.
"그걸 어떻게 믿지?"
"너무하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는 법이라고~?"
뭔가 앞뒤가 바뀐 거 같은데.
"그래서, 뭔 얘기를 하려고 온 거냐."
내 질문에 그 녀석은 킬킬거리며 말했다.
"내가 말할 건 딱 두 가지. 첫 번째는, 씨름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는 부탁이야."
"...뭐?"
"못 들었어? 씨름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그때까지 나는 조금 생각이 없었던 거니까. 악당이 때로는 영웅이 될 수도 있는 법이잖아?"
맞긴 한데 그 말을 본인이 직접 하지는 말라고. 그건 마치 5000년을 산 어린 모습의 호랑이가 자신이 귀엽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잖아.
...헛소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알았어. 그 말은 씨름이한테 전해 줄게. 그래서, 다음으로 할 말은?"
"이야, 정말~. 너무 빠른 전개를 바라시네. 가끔씩은 나도 좀 생각해주지~."
씨름이와 나와 긁지마와 인공지능을 죽이려 했던 놈이 뻔뻔스럽게 잘도 말하네. 너무 뻔뻔하다 싶을 정도여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뭐, 아무튼 두 번째로 할 얘기는..."
거기까지 말한 그 녀석은 갑자기 좀 전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랄까, 말투도 갑자기 늘여대는 말투가 아닌 진지한 말투였고, 얼굴에 짓고 있는 표정은 늘 보였던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닌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뭐, 뭐야.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그 녀석은 말했다.
"씨름이는..."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로,
"어쩌면... 내가...."
꽈악 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내가 아니었다면, 걔도 지금같지 않았을 거야. 내가... 내가 그 녀석을 따돌리지만 않았으면..."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역시 씨름이가 따돌림을 당한 원인은 너였던거냐..."
하지만 그건 이미 씨름이한테도 들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 녀석이 그 뒤에 덧붙인 한 마디만 아니었다면.

"그 때, 나도 씨름이를 버리고 싶지 않았고, 그 때도 정말 후회했었어."
그 직후였다.
엄청난 분노를 느끼며 그 녀석을 벽으로 밀어붙인 것은.
"...그 때도 이미 후회를 하고 있었다고? 그럼... 그렇다면... 어째서 그때라도 사과하지 않았던 건데! 그래도 너희들은 그 전엔 친한 친구였다면서!!!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하지만."
쏘아붙이듯 말한 나를 보며, 그 녀석은 정말로 납득하기 싫었던 그 과거의 잔해를 털어냈다.
"그 때 이미 그렇게 느꼈지만, 그 전에 이미 씨름이를 괴롭히고 따돌렸던 것들은 어떡하라고."
.....아.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 녀석이 왜 사과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고생했을지를 말이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나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어. 그때 미리 사과를 했었다 해도! 씨름이가 이미 겪어버린 정신적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 녀석도 내 멱살을 잡으며 조금 대항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 녀석은 멱살을 잡은 채로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흐느꼈다.
이 녀석도, 최소한의 양심 때문에 뒤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거나, 씨름이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기 때문에. 성찰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워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도 혼자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 전 씨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처음에는 반가움이 넘쳐났을 것이다. 하지만 씨름이가 먼저 자기들을 공격한 결과, 이 녀석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던 스트레스가 그대로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전까지 그들은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녀석은 이미 일으켜 버린 일을 후회해본들 소용 없는 짓이라는 것 때문에, 씨름이는 자신이 그렇게 소외당하고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 때문에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말해본들 소용없는 짓이야. 난 이만 갈게."
안 돼. 이대로 저 녀석을 놓쳤다가는 이 오해와 얽히고 설킨 불안들은 더욱더 극에 달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은 지켜볼 수 없다.
씨름이를 말 없는 외톨이로 만들어버리고, 비록 적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후회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더 이상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녀석을 잡기도 전에, 그 녀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저 멀리 도망쳐버렸다. 이대로 잡으러 가봤자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그 녀석의 목소리가 저 쪽에서 자그맣게 들려왔다.
"아참, 그리고 씨름이는 공책과 연필, 그리고 과자들을 좋아해."
그 목소리는 조금씩 메아리가 되어 서서히 작아져가다가, 이내 사라지게 되었다.
"......"
나는 말 없이 꽈악 쥔 주먹으로 벽을 때렸다. 손이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슬픈 사실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그 녀석은, 그리고 씨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주먹으로 다시 한 번 벽을 세게 쳤다.
"...젠장, 내가 해줄 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거냐고."


[SIDE 긁지마]

......
여기까지. 내가 여태껏 몰래 들은 내용들이다. 역시, 그 녀석도 그 녀석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서로 꼬리를 물고 이리저리 꼬여버렸기 때문에 지난번과 같은 일까지 생겼던 것이다.그것을 알게 되자, 나는 우선 에니포 님부터 토닥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능청을 떨며 나왔다.
"아아~, 여긴 역시 어둡네요. 안 그래요, 에니포... 님...?"
중간부터 능청떠는 연기는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에니포 님이, 울면서 이 쪽을 봤기 때문에.
"...흐윽."
"..."
여기서 장난을 친다 해도 분위기가 수그러질 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에니포 님을 바라보고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언제든지 안겨서 실컷 울어도 된다는 의미로.
두 팔을 벌리자마자 에니포 님이 그대로 안겨든다.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계속 울고 있는 상태였다.
이해한다, 나도. 이 상태에서 그 녀석이든 씨름이든 양쪽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을 만들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웃을 수가 없었다. 책임감이 강하신 에니포 님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계속 울고 계시고.

...앞으로 한동안은, 씨름이에겐 이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말해줘봤자 혼란스러워하기만 할 게 뻔하니까.


그렇게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빠진 와중에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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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씨름

(level 19)
43%
.
Profile image bungdack 2016.08.19. 00:58
뭔가 엄청난 전개를 본것 같은데...
긁지마님은 대체 뭐하시는 분이죠? 매일 엿듣고 다니시는....?!
그리고 두 팔을 벌ㄹ....
아니다....
슬픈 내용인데 머리속에 계속 상상되서 안되겠어...
lost씨름 2016.08.19. 01:18
이, 이 사람 대체 뭘 말하려는 겁니까?!
Profile image bungdack 2016.08.19. 06:58
긁지마님이 두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과
에니포님이 안긴 모습이 상상됩니다.....!!
으아아아아
Profile image 긁지마 2016.08.22. 13:45
에....
기왕이면 좀더 귀여운사람이랑 안고 싶은데요...
lost씨름 2016.08.22. 14:29
그냥 납득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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